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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 Study

[전쟁과 경제 1편] 제1차 세계 대전과 세계 경제

by 마포갈매기 2025.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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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배경과 발발

  •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은 제국주의 경쟁, 민족주의 대두, 복잡한 동맹 체계로 긴장감이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영국·프랑스·러시아(삼국협상)와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삼국동맹)로 대표되는 두 동맹이 팽팽히 맞섰고, 발칸반도는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민족주의 갈등으로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습니다.
  •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 러시아는 세르비아 지원을 위해 총동원령, 독일은 러시아와 프랑스에 선전포고, 영국은 벨기에 침공을 이유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유럽 전역이 전쟁에 휘말립니다.

전쟁의 전개와 양상

  • 전쟁은 곧 ‘총력전’으로 확산됩니다. 서부전선(프랑스-벨기에-독일 국경)은 참호전으로 고착화되어 수백만 명의 병사가 좁은 땅에서 소모전을 벌였습니다. 기관총, 대포, 독가스, 탱크, 항공기 등 신무기가 대량 투입되어 전쟁 양상을 바꿨습니다. 동부전선(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vs 러시아)은 보다 유동적이었으나, 러시아의 후퇴와 혁명으로 1917년 러시아가 이탈합니다.
  • 해상에서는 독일의 잠수함(유보트)이 영국의 해상 보급로를 위협했고, 미국 상선 공격 등으로 미국이 1917년 참전합니다. 전쟁은 유럽을 넘어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식민지로 확대되었습니다.

전쟁의 종결과 경제, 사회적 충격

  • 1918년 독일 내부의 사회 불안, 동맹국들의 연이은 항복, 미국의 참전으로 전세가 기울면서 독일은 항복을 선언합니다. 전쟁은 1918년 11월 11일 종전되었습니다. 전후 파리강화회의에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어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 상실, 군비 축소를 강요받았습니다.
  • 경제적으로 유럽은 전쟁 수행을 위해 막대한 차입과 화폐 발행을 했고, 인플레이션과 부채, 산업·농업 기반 파괴로 경제가 붕괴되었습니다. 영국은 채무국으로 전락했고,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자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독일은 배상금 부담과 경제난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 대량 실업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는 1929년 세계대공황의 구조적 원인이 되고, 나치 등 극단주의 세력의 성장 토대가 되었습니다.

세계 질서의 변화

  • 군수산업의 대량생산 기술은 전후 민간 산업에 영향을 주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는 등 사회 구조도 변화했습니다. 전쟁으로 유럽의 힘은 약화되고, 미국과 일본 등 비유럽 국가가 국제무대에서 부상했습니다. 국제연맹 등 새로운 국제질서의 모색이 시작되었으나, 전후 불안정과 경제 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경제에 미친 영향

유럽 경제의 붕괴와 미국의 부상

  • 유럽 주요국(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전쟁 수행을 위해 막대한 군사비(연합국 1,470억 달러, 동맹국 610억 달러)를 지출했고,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차입과 화폐 발행에 의존했습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파운드화 등 주요 통화의 가치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 영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했고, 전후에는 해외 투자자에서 채무국으로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전쟁 전 세계 금융 중심이었던 런던은 전후 뉴욕에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 미국은 전쟁 기간 유럽에 대규모 물자와 자금을 제공하며 채권국으로 부상했고, 전후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미국은 전쟁 전 37억 달러의 채무국이었으나, 종전 후 126억 달러의 채권국이 되었습니다.

산업, 농업 기반의 파괴와 경제 구조 변화

  • 유럽 각국의 산업시설, 교통망, 농업 기반이 전쟁으로 크게 파괴되었고, 농업 생산량은 격감했습니다. 주요 자원(금속, 연료, 면화 등)이 군수용으로 전용되어 민간 경제는 위축되었습니다.
  • 전시 경제체제(총력전)로 인해 여성, 노인, 청소년 등 비전투 인구가 산업 현장과 농업에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전후 경제위기와 대공황의 단초

  • 전쟁 후 각국은 막대한 전쟁 채무와 배상금(특히 독일의 경우)에 시달렸고, 인플레이션과 실업, 경제적 불안정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는 1929년 세계대공황의 구조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 독일은 전쟁 배상금 부담으로 경제가 붕괴했고, 이로 인해 사회적 불안과 극우 세력(나치)의 성장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일본 등 비유럽국의 성장

  • 일본은 전쟁에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군수물자 수출 등으로 경제적 반사이익을 얻어, 단기간에 흑자국이 되고 국제적 지위를 높였습니다.

기술 발전에 미친 영향

무기와 전술의 혁신

  • 기관총: 맥심 기관총 등 자동화 무기의 대량 사용으로 참호전이 고착화되고, 인명 피해가 급증했습니다.
  • 포병: 대구경 장거리 포의 개발로 전장 규모가 확대되었습니다.
  • 화학무기: 독가스(염소, 머스터드 가스 등)가 처음으로 대규모로 사용되었고, 이에 맞서 방독면 개발이 촉진되었습니다.
  • 탱크: 참호전을 돌파하기 위해 영국에서 최초로 탱크가 개발·투입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현대전에서 필수 무기로 자리잡았습니다.
  • 항공기: 정찰, 폭격, 공중전 등 다양한 용도로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 잠수함(유보트): 독일의 잠수함전은 해상 봉쇄와 무차별 공격으로 해전의 양상을 바꿨습니다.

민간 및 사회 분야의 기술 발전

  • 의학: 전쟁 부상자 치료를 위해 성형외과, 재활의학, 감염병 관리 등 의료기술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성형수술과 필라테스(재활운동법)도 이 시기 등장했습니다.
  • 생활용품: 트렌치코트(방수 외투), 초콜릿(군용 에너지 식품), 방독면 등 일상생활과 패션, 식품 분야에도 전쟁발 기술이 대중화되었습니다.
  • 산업과 교통: 철도, 통신, 대량생산 기술이 군수산업을 통해 발전했고, 전후 민간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학기술의 국제적 판도 변화

  • 전쟁 후 과학기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기를 거치며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요약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몰락과 미국의 부상, 산업·농업 기반의 파괴, 전후 경제위기와 대공황의 단초 제공 등 세계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시에 참호전, 기관총, 화학무기, 탱크, 항공기 등 현대전의 상징이 된 군사기술의 혁신을 이끌었고, 의료·생활·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 발전도 촉진했습니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술과 사회 변화가 시작된, 인류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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